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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현상

켄트 & 하비

  켄트는 의사란 직업의 사람들은 끔찍하게도 싫어했다. 인간이 생활하는 것에 있어 필요한 직업 중 하나인 의사에게 생명을 보호받는 것이 아닌 죽임을 당할 뻔한 전적이 그 이유일 것이다. 조직에서 의사를 한 명쯤은 두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따로 마련된 의료실에 발을 들였던 한 남자는 자의로 온 것이 아니었다. 이마에 겨누어진 쇳덩어리에 짓눌린 남자는 뭐든지 전부 하겠다며 제발 시켜만 달라고 애원했지만 분명 자의는 아니었다. 그렇게 끌려왔던 조직의 첫 의사는 머리를 조아리고 목숨을 구걸하며 맡은 일에 과할 정도로 성실히 임하는가 싶더니 어느 날 일을 터트렸다. 그는 진료가 끝나면 항상 회수해가는 의료 도구들 사이에서 한 개의 주사기를 소맷자락 안으로 몰래 숨겼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감시하는 한 조직원의 눈을 주삿바늘로 찌르고 달아났다. 그 감시 조직원이 바로 켄트였다. 의사는 자신이 머물던 층의 계단을 내려가기도 전에 붙잡혀 과한 총성과 함께 하얀 가운을 자신의 피로 물 들이며 죽임을 당했다. 그 일 이후로 왼쪽 눈에 인공 안구를 착용하게 된 켄트는 새로 들이게 된 의사들마다 예사롭지 않은 눈빛으로 쏘아보고 다녔다. 조직 환경을 견디지 못한 의사들은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거나 도망치려 했고 결과는 언제나와 같았다. 혹시 켄트가 의사를 구박하고 다녀서 수명이 짧은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는 이 한쪽짜리 눈으로 노려보기만 했을 뿐이지 별다른 말이나 행동은 하지 않았다며 어이없는 웃음을 뱉어냈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새로운 의사가 조직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름은 하비였다. 그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나이가 어렸고 굉장히 우스꽝스러웠다. 이마가 보이도록 옆으로 넘긴 머리가 어디서 한바탕이라도 한 것마냥 지저분하게 헤집어져 있었고 안경은 양쪽 알이 전부 깨진 채로 삐딱하게 기울어 있었다. 착용할 이유가 사라진 안경을 굳이 쓰고 있던 그는 안경을 벗어낼 용기나 정신조차 없어 보였다. 어깨와 다리를 눈에 띌 정도로 덜덜 떨고 있어 곧 혼절해버려 바닥에 픽 쓰러진다 하던들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왜 이리 비실비실한 놈을 데려왔어. 이번 의사도 빠른 시일 내에 죽는다면 그 탓이 자신에게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켄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

 

  삐걱대는 의자에 앉아 시선을 내리깐 하비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켄트는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빌려나. 살려달라고 애원하려나. 이곳에 처음 온 의사들은 항상 그랬다. 살려달라거나 바깥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켄트는 당연하지만 어떤 요구사항도 들어준 적이 없었다. 하비는 대답이 없는 그 때문에 자신이 하던 말을 이어서 해도 되는지 알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족갑과 연결된 수갑의 사슬이 잘그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머리카락 밑으로 드러난 목덜미와 손등이 창백해 보였다. 고개를 숙여 얼굴을 볼 수는 없었으나 겁에 질린 표정일 것이 분명했다. 그에 어울리게 하비는 뼛속까지 떨리는 목소리로 기어가듯 말했다.

 

  “앞이 잘 안 보여요... 안경이 깨져서...”

 

  그걸 누가 모르겠어. 켄트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턱을 까딱이며 바라봤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란 거지?”

 

  차갑게 돌아온 대답에 몸을 바짝 움츠렸다. 역시 괜히 말한 건가. 더욱 숙여지는 고개와 조심스럽게 모아지는 다리가 대충 보기에도 하비의 속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주었다. 속도 편하지. 강제로 붙들려와선 안경이나 찾다니. 켄트는 팔짱을 끼며 짜증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어떤 것이 떠올랐는지 켄트는 곰곰이 생각하는가 싶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의료실 구석에 위치한 서랍 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제일 첫 번째 칸을 열었다가 다시 되닫곤 두 번째 칸을 열더니 무언가 손에 쥐어 꺼내며 돌아왔다. 검은색으로 아무런 무늬 없이 밋밋한 디자인의 안경 케이스였다. 딸각 열리는 소리가 나자 그제야 하비는 눈치를 보듯 고개를 들었다. 직사각형 모양으로 바닥에 떨구면 툭 부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헐렁하고 부실한 안경이었다.

 

  “네가 오기 전... 아니, 그보다 더 전에 의사던가. 아무튼, 다른 의사가 끼던 안경이다. 시력이 맞을진 모르겠지만 우선 껴봐. 제대로 된 건 나중에 알아봐 주지.”

 

  켄트는 왜 자신이 이런 것까지 신경써야 하냐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당장 진료를 볼 때 필요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긴 했는지 안경을 챙겨주었다. 하비는 의문스런 어투로 말했다.

 

  “전에 의사요...? 제가 오기 전 다른 의사가 있었단 말씀인가요?”

  “그래. 그쪽은 신경 끄고 이제 네가 맡을 일이나 잘해. 너도 전에 있던 의사에 속해지고 싶지 않으면.”

 

  그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들은 하비가 덜컥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피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켄트는 자신의 왼쪽 의안에 모래라도 낀 것처럼 꺼끌거리는 괜한 느낌이 들었다. 그와 마주하는 것을 한시라도 빨리 끝마치고 싶은 마음에 켄트는 안경을 꺼내 건네며 재촉했다.

 

  “빨리 써. 필요도 없는 깨진 안경을 왜 아직까지 쓰고 있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그의 말에도 하비는 손을 쥐락펴락하기만 할 뿐 안경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껏 선의를 베풀어 건네준 안경을 거부하는 모양인지 켄트의 표정이 험악해지려 하자 하비가 그의 분위기를 눈치채고 다급히 변명하듯 말했다.

 

  “소, 손이 묶여서... 쓰질 못하겠어요...”

 

  그의 말을 변호하듯 족갑과 수갑 사이를 잇고 있는 사슬이 서로 부딪쳐 차가운 소리를 내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군. 켄트가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곤 하비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갑작스레 닿는 손길에 겁을 먹은 그는 서툴게 안경을 벗기는 행동에 몸을 움찔거렸다. 손가락 끝의 굳은살이 피부에 닿아 간지러웠다.

 

  “날 똑바로 봐.”

 

  명령조로 들려오는 말에 하비는 다른 대답 없이 고개를 들어 켄트에게 향하도록 했다. 시선은 자연스레 옆으로 피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본래 하비의 것보다 얇고 시린 안경테가 눈가를 스치고 귀와 콧등에 걸려 안착했다. 잘 보이나. 켄트의 물음에 하비는 눈을 몇 번 끔뻑이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흐릿하지만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하비는 여전히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전보단 안정됐지만 두려움에 질린 눈과 표정이었다. 그러면서도 감사 인사는 똑바로 전하는 그가 켄트는 우스우면서 하찮음을 느껴지게 했다. 그는 하비가 전에 쓰던 깨진 안경을 케이스에 넣어 닫았다.

 

  “괜찮다니 다행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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