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번길 펠리컨빌라 뒷골목
샤샤 & 셰인
35번길 펠리컨빌라 뒷골목은 소문이 좋지 않다.
모두가 쉬쉬하는 일이었음에도 모순적으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작당한 마피아들이 동네를 장악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숙덕거리면서도 그들에게 매달 명목상의 보호비를 걷어다 바쳤고 은근한 회유와 협박 끝에 결국 빌라 한 동을 싼 값에 크게 내어주기도 하였다. 펠리컨빌라는 전철역에서 5분 거리의 교차로에 위치했다. 그곳은 꽤나 임차비를 걷기 좋은 곳이었지만 마피아들이 그곳에 눌러앉기로 결심한 이후로는 모든게 망가졌다. 골목은 싸한 공기만 남기고는 조용해졌고 밤에는 배로는 더 시끄러워졌다. 가끔가다 들리는 총성에도 주변 주민들은 잠시 움찔하다가 두꺼운 모직커튼을 더욱 단단히 여몄을 뿐이었다. 또 누군가 뒈졌거니. 이웃의 일에는 다들 관심이 없었다.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옆집의 치들을 이웃으로 칭해야 하느냐 따진다면 그것은 역시 모호한 일이기는 했다. 어느 누구도 그곳에 계속 살고 싶지 않았지만 가난한 주민들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그저 조용히 몸을 웅크리고서 그들은 얌전히 엎드렸다. 발에 채일 모난 돌이 되지 않게끔.
“좆같은 새끼들. 이럴 바에야 갱단놈들이 더 낫지.”
“그거 완-전 헛소리인거 알고는 있지. 샤샤?”
세바스찬은 그녀를 비웃으며 담배를 태웠다. 근처에서 얻어맡는 담배냄새는 달기도 달았다. 세바스찬은 펠리컨빌라 근처의 술집에서 일했다. 마피아들이 이쪽을 거점으로 삼은 이후 뒷골목의 모든 상가의 매출이 떨어지고 있을 때 그곳은 매출이 수직상승한 거의 유일한 곳이었다. 물론 낮에는 붐비던 그곳도 한산하기 마련이었고 샤샤는 종종 일거리 없는 그를 찾아 뒷문으로 찾아들고는 했다. 둘은 오래된 친구였다. 이렇게 만난 둘은 술집 뒤의 낮은 계단에 앉아 함께 담배를 태우거나 혹은,
“금연 힘들겠어?”
“닥쳐, 셉.”
개새끼가. 샤샤는 바닥에 침을 뱉었다. 입안이 바짝 말랐다.
“왜 네 그 애인인지 뭔지가 싫어하시잖냐. 키스할 때 싫다고 담배 끊으라며.”
“씨발, 알바야. 내가.”
“아, 대마는 괜찮대?”
“약쟁이 새끼야 그냥 입 다물고 그 망할 연기나 계속 뱉어대.”
“아무리 내 친구지만 샤샤 넌 존나 웃긴 새끼야 진짜.”
세바스찬은 낄낄대며 연기를 길게 뱉었다. 그녀는 퍼지는 연기가 아쉽다는듯 킁킁대다 그를 껴안았다. 끌어안고서는 그의 목덜미에 이마를 문지르며, 씨발 나 이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뒤지는거 아닐까. 심란한 얼굴로 길게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머리를 몇번 건성으로 토닥이던 세바스찬은 화들짝 놀라며 그녀를 밀어냈다. 그가 뱉은 말은 분명 더우니까 떨어져 정도였으나 그는 불안한듯 골목 한쪽을 눈짓했다. 골목길 바깥을 내다보는 것 조차 불필요한 일이었다. 아, 눈 마주쳤다. 샤샤는 움찔 어깨를 웅크리다가 자세를 바로 하고는 어색한 동작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골목길 끝에 긴 그림자를 늘이고 서있던건 셰인이었다.
***
그를 만난건 엿같이도 벌써 오래되어갔다. 첫 만남은 샤샤 저의 기억으로는 세바스찬이 일하는 술집이었다. 인심 좋은 거스가 아무리 단골에게 서비스가 후했다 한들 그녀는 순진하게 술만 마시러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조금 울적한 얼굴로, 바 구석에 홀로 앉아 잔을 홀짝이는 셰인은 그녀의 시야에 금방 들어왔다. 그는 평화로운 제 휴식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그 잘빠진 얼굴에 인상을 쓰고서 꺼지라고 웅얼거렸으나 그녀는 되레 상대가 그렇게 나올수록 더 오기가 생기는 사람이었다. 알고보니 그 또한 술집의 단골이었으니 일은 더욱 쉬워졌다. 일주일에 서너번 씩은 마주치게 되니 그도 내내 인상만 쓰고 있지는 않았다. 취해서 약간 표정이 풀려있는 그에게 꽤나 끈질기게 들이대고, 끝내는 그도 피식 웃으며 그녀에게 한 두 문장 대답을 해주는 것을 보고서야 그녀는 만족해하며 세바스찬에게 눈짓해보였다. 야, 봤지? 잔을 닦던 세바스찬은 기가 차 그녀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또한 갈수록 그는 그녀와 대화하는걸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고 간혹 묘한 눈빛까지 던지곤 하였으니 그를 침대까지 끌어들인 것은 샤샤에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와 번호도 서로 교환하고선 연인 이하 지인 이상의 아슬아슬한 관계까지 즐기게 된 것 까지. 딱 거기까지는 완벽히 샤샤의 계획대로였다.
그렇다면 언제쯤부터 그녀의 계획이 잔뜩 어긋나서는 그녀가 그를 그렇게나 피해다니게 했냐하면, 파트타임으로 일하던 식당 바닥에 대걸레질을 하던 와중 그가 저와 똑같이 차려입은 시커먼 정장 무리들과 함께 들이닥쳐서는 보호비를 뜯어가던 모습을 보게 된 뒤가 아닐까.
와, 세상에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어도 적당히 없어야지. 그녀는 은근슬쩍 술집에 찾아오는 빈도를 줄였으며 그의 전화를 못 받은 척 했다. 능청스럽게 아 내가 좀 바빠서, 넘어가려는 샤샤를 보고서도 셰인은 별 말 없이 얼굴만 조금 찌푸릴 뿐이었다. 이렇게 피해다니는 것이 완벽한 해답이 되어주지 않다는 것은 그녀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도 우리가 뭐 사귀는 것도 아니었고, 그도 저도 그렇게 짙은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으니 이 정도로 굴면 알아서 질린 것으로 간주하고 떨어져 나가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것이 안일한 생각이라는 것 쯤 샤샤도 잘도 알고 있었다.
“시발 이 좁아터진 동네.”
그녀 역시 35번지 뒷골목에 사는 사람이었다. 그 소리는 이 동네 안쪽에서라면 어딜 가도 어떻게든 셰인과 부닥칠 수 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어쩜 제가 가는 곳에만 따라다니듯 이런건지 환장할 노릇이었다. 샤샤는 식료품점으로 들어오는 한 무리의 정장들을 보고서는 얼굴을 구겼다. 무리가 저를 밀치고 가게로 들어가는 동안 하나는 가게 문을 가로막고 서서 손님들이 나가지 못하게 했다. 가게 안쪽으로 비집고서는 들어온 치들 중 하나는 제가 아주 잘 알고 있던 얼굴이었다. 그는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와, 아주 눈도 안 마주치려고 하지.
“이봐, 이번 달도 보호비가 늦잖아.”
“그게 저희가 사정이 있어서... 이번 달만 좀 봐주시면...”
“아저씨, 저번 달에도 봐줬는데 진짜 이래야겠어? 우리 좋게 좀 가자고.”
아 저 씹새끼들. 그녀는 셰인과 얽히기 전에는 차라리 마피아들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소매치기 같은거나 일삼는 갱단놈들 보다는, 내가 뭐 가게를 낸 것도 아니고 적어도 얘네는 나한테 피해가는건 없잖아? 그 생각은 셰인이 뭘 하는지 알게 된 이후로 완전히 바뀌었다. 저것도 직업이랍시고 꼴같잖게 정장이나 차려입고 몰려다니는 무뢰배들. 잔뜩 찡그린 얼굴로 그의 옆모습을 노려보는 것을 셰인은 깔끔히도 무시했다. 그 꼴을 무시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그의 옆에 서있던 대충 셰인의 직장동료쯤 되는 남자였다.
“야, 너는 뭔데 야리냐.”
“아니.. 아니, 나는 그냥..”
“씨발 눈깔 안 돌려? 저 새끼 대신 네가 쳐맞고싶어?”
“야, 적당히 해. 오늘은 얌전히 할 일만 하고 오라고 했잖아. 하여간 새끼 의욕이 지나쳐도 문제라니까. 야, 이거나 받고 진정해.”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다른 남자가 넓은 아량이라도 배풀어준다는 양 느글느글한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볼 때 까지도 셰인은 카운터의 점원에게서 시선 하나를 돌리지 않았다. 너는 이걸로 봐주겠다며 양손에 잔뜩 들렸던 맥주병도 빼았긴 채로 그녀는 가게에서 내쫓겼다.
개새끼.
가게 옆으로 난 골목으로 걸어가다보니 억울한 감정이 가슴 가득히 불쑥 쳐올랐다. 샤샤는 아주 어려서부터 이제껏 이 동네에서 자라왔다. 치안은 당연히 지금만큼은 아니더라고 엇비슷한 수준으로 구렸고 당연히 이런 좆같은 시선을 한번도 안 받아본 건 아니었다. 저런 양아치들에게 시비가 걸린 것도 처음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늘따라 밀려드는 짜증에 그녀는 괜히 버려진 깡통을 걷어찼다.
깡-
요란한 소리를 내며 텅 빈 조자콜라 캔은 벽에 부딪혔다.
그녀는 이 감정이 무엇 때문인지 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이유를 개 같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야.”
“뭘 따라와.”
“그냥 괜찮은가 해서.”
아까는 무시도 잘하더라? 눈길도 하나 안 주던데? 빈정거리고 싶은걸 꾹 눌러참으며 그녀는 태연히 입을 비죽였다.
“괜찮은데.”
“대체 뭘 믿고 그렇게 굴어. 아무튼 오늘 시간 되냐? 안 본지 꽤 됐지?”
“어.”
대답을 들었으니 금방이라도 떠날 것 처럼 굴던 셰인이 머뭇거리다 비닐봉투를 내밀었다. 뭔가 싶어 열어본 봉투 안에 방금 전 가게에서 뺐겼던 술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걸 본 샤샤는 기가 차 헛웃음을 지었다. 시발 거기서 아는척 할 용기는 안 나겠고.
11시쯤 술집 앞으로 나와. 데리러 갈게.
그와의 관계는 흔히 나오는 싸구려 로맨스에서나 보던 그런 관계는 아니었다. 그런 로맨스 소설에서는 보통 남주인공은 능력있었다. 돈도 많았고 대부분 안정된 직장이 있었다. 젊고, 혹은 젊지 않더라도 일단은 몸이든 얼굴이든 잘빠졌고, 위기에 빠진 여주인공을 매번 구해주었다.
씨발 그 좆같은 소설들. 샤샤는 여전히 그런데에 로맨틱한 망상을 하고 있기에는 충분히 삶을 좆같이도 살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기대는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묘하게 제 마음을 당겨왔다. 서로에게 좋아죽는 웃기는 연애라도 하고, 키스 한 번에 가슴이 뛰고, 같이 잠에 들고 일어나는 뭐 그런.
그런거라도 바랐는지 몰랐다. 아무튼 셰인과 저의 관계는 그 정도가 다였다. 따로 실망도 할 필요가 없는 지인 이상, 연인 이하, 또 친구 이하의 그 미묘한 관계.